오래된 아이폰 앱 개발 후기 - 붙여넣는 영한사전 peist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는 부끄러운 얘기지만 이 포스트는 디테일한 기술 정보나 노하우는 일체 없으며(당시 지식은 다 까먹기도 했고), 일기는 일기장에 쓰지 않고 블로그에다 나름 뿌듯했던 일화를 자랑삼아 적은 글임을 미리 밝혀둡니다.


아이폰3GS 아재들


2009년 11월 29일, 일요일 새벽 2시, 수도권의 한 우편물집중국. 거무칙칙한 30대는 훌쩍 넘어보이는 아재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뭐땜시? 이 날은 국내 최초 아이폰3GS 예판 구매자들이 택배가 안온다고 우편물집중국까지 직접 쳐들어가서 받아온 날.

11월 새벽 2시, 완연한 겨울 추위에도 아랑곳 하지않고 모여든 아재들이 대략 40명쯤... 예판 초도물량이 조기에 완판되고 배송도 몇십차까지 나눠서 했었는데 이 날, 이 아재들의 회차는 금요일 오후에 발송되어 토요일 오후에 집중국 도착, 일요일을 스킵하고 빨라야 월요일에 배송이 될, 말도 안되는 상황이 벌어진거다.

그토록 기다리던 주말을 아이폰과 보내지 못한다는 공포에 사로잡힌 아재들은 새벽 2시경에 모아이폰카페에서 생판 모르는 사람들끼리 약속을 하고 집단으로 우편물집중국에 쳐들어가기로 하는데.. 꼭두새벽 수십명의 아재들을 어느 누가 막아서고 버텨냈겠는가.

참, 모지리들, 철도 없다, 무슨 하나같이 애도 서넛은 있어 보이는 아재들이 전화기 하나 받을라고 이런 몰상식한 행동을 하는지.. 라고 경비아저씨가 한마디 하셨더랬지. 아저씨가 경찰에 신고 안한게 다행이다.

어쨌든 중요한 건 나도 그 중 하나라는 것.

아무튼 아이폰은 진정한 전화기와 PC와 무선인터넷의 결합이었고 고화질 디카가 달린 것도 모자라 그걸 바로 SNS에 공유 할 수 있었으며, 원하는 앱을 마음대로 깔아 쓸 수도 있는 혁명이었다.

그 혁명이 정식으로 국내 출시를 한 사건. 그리고 그걸 1분 1초라도 먼저 손에 넣고자 하는 오로지 하나의 목적만으로 모인 순수한 영혼들과 함께 했던 날..

유난히 추위를 잘 타는 약골에다, 당시 첫째도 20개월이 채 안되 새벽마다 깨면 달래주던 시절, 아내의 잔소리도 불사하고 나는 나갔었다.

되면 해야하는 걸 하면 된다로 시작


지금 내 손엔 아이폰6s가 들려있다. 최초 국내 출시 예약구매자에 누구보다도 일찍 손에 쥔 아이폰빠지만 2년 약정을 어떻게든 해결하면서까지 매년 마다 신모델을 구매할 정도로 넉넉한 형편은 아니다.

그래서 내가 가져본 모델은 3GS, 4s, 5s, 지금은 6s인거지. 2년 간격으로 바꿨다. 지금은 Xrs랑 머시기 여러가지 나오지만 글쎄, 이젠 뭐 감흥이 없어진지 오래.

지금은 잘 기억도 안나지만, 왜 그랬을까. 아마 나는 전천후 fullstack developer에 애플 추종자이니 앱 하나쯤은 뚝딱 만들어내리란 자신감?

아이폰 앱을 만들면 돈을 벌 수도 있대, 그리고 내 직업이 직업인만큼 이런 거는 좀 허락해 주라며 아내를 꼬셔서 결국 150만원 정도 추가 투자를 받아 맥북을 구매하여 개발에 착수 한 거다.

출퇴근 시간 버스에서뿐 아니라, 집과 회사에서 눈치 봐 가면서, 걸어가면서도 애플 개발자 홈페이지에서 앱개발 문서를 들여다봤다. 아이폰으로.

이제 슬슬 시작 해 볼까 했더니 애플 개발자 라이센스 11만9천원 추가 자본 투입.

맥OS 뿐 아니라 오브젝티브C?, XCode도 처음이었던 내가 한달을 그렇게 보면서 개발을 했더니 뭐가 하나 만들어지긴 하더라.

어쨌든 아이디어는 이렇다. 아이폰 내장 사파리 브라우저에서 웹서핑을 하다가 모르는 영단어를 복사 하고 다른 데 가서 이것저것 만질 필요 없이 이 앱을 실행하면? 자동으로 붙여넣기와 동시에 단어의 뜻이 스트레이트로 보여지는 것!

.. 그래 지금은 이해가 안가겠지. 위젯같은 것들이 원천적으로 깔리는 안드로이드 갤럭시 쓰는 사람도 이해 안갈꺼야. 당시엔 아이폰의 사파리 브라우저에서 영한사전이 지원되지 않았기때문에 그걸 노린거징. 굿 아이디어~ 당시 유사 기능을 가진 경쟁앱도 없었다.

어쨌든 구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을 언급하자면, 처음 써 보는 git을 무조건 써야 했다는 것, 그리고 프로비져닝 프로파일 인증 개념, 각종 뷰를 오가면서 데이터를 넘기는 일. 또 뭐가 있더라.. 아, 버튼 애니메이션 효과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구현하는 부분등이었던 것 같다.

아이폰앱 "붙여넣는 영한사전 Peist"


이름은 붙여넣기의 paste에서 따서 pasty라고 지었다가 나중에 peist로 바꿨다. 아래는 초기 버젼.. 이제는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캡처화면이다. 나조차도 빌드된 파일, ipa던가가 없다.(물론 소스코드는 있지만.. 현재 버젼의 맥에서 빌드가 될지 싶다.)


아이폰앱 아이콘

아이폰앱 화면 캡처아이폰앱 화면 캡처

아이폰앱 화면 캡처
초기버젼, 카페에 자랑삼아 올린게 남아 겨우 구한 화면들
앱아이콘
최신 버젼 아이콘, 구동 화면은 찾을 수가 없다.

교육 카테고리 10위까지 갔던 것 같다. 잠시동안이지만.

아 그리고 물론 지금은 망했다. 개발자 라이센스를 갱신 하지 않았아서 강제로 삭제 당했다. 검색 해도 안나오고 구매내역으로 봐도 돈 안내서 강제 철거 당한 것은 나오지 않는다.

라이센스를 갱신하지 않은 이유는 1년이 지나니 열정도 식어버리고 흠, 사실 지금 돌이켜보니 나이가 들어 체력이 꺾이기 시작 할 때쯤이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머리도 그 때부터 썩어간 듯 하고.

또 한가지 가장 중요한 이유를 들자면, 완성본을 애플에 제출하고 심사결과를 기다리는 매 순간이 무진장 심신을 피폐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이폰 앱 심사 결과메일 - In Review
당시 받았던 메일 캡처, In Review.. 일주일이 인리뷰 지옥이었다.

너무 완벽한 아이디어라서 통과만 되면 순식간에 누적 다운로드 수십만은 될 줄 알아서 더더욱 꿈에 부풀어 있었다.

제출 후, 심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1주일이 걸렸는데 1주일 내내 꿈을 꾼 거 같다. 꿈 속에서는 항상 심사 통과나 거절 메일을 받았는데 새벽에 꿈에서 깨어나면 한동안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헤롱거렸다. 분명 통과했다는 메일을 받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어떤 메일도 받은 적도 없는 현실이 짙어지는..

아이폰앱 리뷰 status


아무튼 그 날은 왔고 앱스토어에 드디어 내 앱이 검색 되자 나는 환호 했고 그대로 앓아누웠다.

그 뒤로 광고(iAd)를 붙여볼까도 생각 했지만 현실적으로 누적다운로드수가 너무 안나오는데다(마케팅 비용이 없었다는 뻥이고..) 한번 세게 데이고 나니 의지가 완전히 꺾였던 듯.

그나마 두 차례 업데이트에서 가장 공을 들인 건 앱 아이콘 디자인이었는데, 이것때문에 포토샵 평가판을 깔고 공부까지 했다. 사실상 이 앱에서 가장 공들인 부분은 바로 아이콘이다. 그 동안 디자이너들을 너무 우습게 본 게지.

언제인가 이상한 유사 짝퉁 앱이 내 앱과 대략 한 달 차로 후속 출시 했는데 항상 교육 카테고리 상위권을 차지 했고(뻥안치고 나보다 허접이었는데..) 게다가 그건 광고까지 달고 인앱(In-App)결제까지 넣었던 것. 리뷰에 찬사도 쏟아지고.

내께 훨씬 깔끔하고 광고도 없는데 이 무슨 불공평한 세상이란 말인지! 내가 마 지금 보여주고 싶은데 보여줄 수가 없네. 8년 전일이라 불가능하네.

어쨌든 이 앱은 아이폰5s를 가졌던 시점까지 아이튠즈 동기화로 의도치 않게 내 폰에만 계속 남아있었는데, 지금은 뭐 때문인지 몰라도 사라졌다. iOS 올라가면서 애플 얘네들 아예 찌거기는 제거 하기로 한게 아닐까 싶다.

자, 갑자기 결론. 이백사십이만칠천구백원!

  • 아이폰4s 16G : 당시 출고가 81만 4천원
  • iOS Developer Program : 11만 9천원
  • 맥북프로 13인치 2011년형 : 149만 4천 9백원
남은 건 github에 있는 소스코드 뿐. 현재 위에 있는 캡처화면 외에는 구동 화면을 볼 수 있는 곳은 없다.

사실은 한번쯤 해 보기로 마음먹은 걸 정말 해낸 내가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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